위대한 개츠비
당시의 문화를 보면, 100년이 지난 지금과 유사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든다. 파티에서 사람들을 초대해 인맥을 쌓고,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은 현대의 SNS와 비슷하다. 소통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과장되게 부각시키고, 자신의 가치를 높여 보이도록 하기위해 가장 잘된 모습만을 (가짜모습) 보여준다. 1920년대의 한껏 꾸미고 참석하는 사치스럽고 향락적인 파티 처럼.
그 당시 파티는 가진 자들의 향락적인 문화였지만, 개츠비가 초대한 사람들은 상류층이 아니라 상류층처럼 누리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보면, SNS 역시 가진 '척'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된 하나의 향락적인 문화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가 보여주는 모습은 ‘진짜’였다는 점이 감동적이다. (스포일러 주의) 당시 등장 인물들은 물질적인 허세 뿐만 아니라 외도와 같은 비윤리적인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개츠비의 순수한 사랑이라는 '진짜'의 모습과 대비시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배가되어 보이도록 만들어주었다.
그가 했던 생각들, 행동들, 그리고 모든 결정은 오직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 때 자신의 기준을 상황에 맞게 효율적이거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바꾸지만, 개츠비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만 있었다. 나는 개츠비의 사랑을 단순한 집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소설에서 그를 묘사한 다음과 같은 모습에 있다.
" 그는 열 일곱살의 청년이 만들어낼 법한 제이 개츠비 같은 인물을 만들어 낸 뒤 이 이미지에 끝까지 충실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완성해냈다.
누군가는 개츠비를 미련하다, 혹은 불쌍하다 또는 너무 순수한 거 아니야? 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본 개츠비는 1920년대의 자본주의라는 사치와 향락적인 문화의 반대편에 있는 ‘인간다움’을 실현한 이상적인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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